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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기〉 리뷰

[8.3/10]


〈한눈팔기〉. 나쓰메 소세키의 여느 책과 마찬가지로 제목은 소설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 여태 읽어온 소세키의 책이 8권이었기에 그나마 그가 살던 시대의 모습을 드러낼 것과 그것이 현재 나의 삶과 무관하지 않을 것만은 확신했다. 이번 확신은 실제와 맞아떨어졌을까? 확신을 확인하기에는 책에 손때가 필요했다.



2019/01/17 - [책리뷰] - 나쓰메 소세키의 자전적 소설, 〈한눈팔기〉의 줄거리



소설은 겐조의 내면을 깊이 보여준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한눈팔기〉가 소세키의 자전적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소세키는 한때 양부 밑에 있다가 돈과 증서를 조건으로 본가로 돌아온다. 겐조와 마찬가지다.


왜 소설의 제목이 〈한눈팔기〉였을까? 그 의미는 겐조의 발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겐조는 강의를 하던 중 청년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니, 자네들은 나처럼 과거 때문에 번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행복하다는 거네.”(131)


그리고 베르그송의 이론을 이야기한다.

“인간은 평소 미래만 바라보며 살아가다가도 그 미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어떤 위험 때문에 돌연 막혀버려 이제 끝장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지면 갑자기 눈을 돌려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는 거지. 그래서 모든 과거의 경험이 한꺼번에 의식에 떠오른다는 거야. 그 주장에 따르면 말이지.”(133)


겐조는 현재를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날그날의 일에 집중했고, 다음날 일 준비를 했다. 그의 고민은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이었고, 아내와의 갈등이었다. 하지만 시마다를 지나친 것과 오쓰네의 편지로 과거의 냄새는 그에게로 흘러들어왔다. 과거는 꿈처럼 사라졌었지만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이때부터 겐조는 과거를 돌아보기 시작한다.


(86) 겐조는 자기 배후에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끝내 잊을 수가 없었다. 평소의 그에게 이 세계는 과거의 것이었다. 하지만 만일의 경우에는 갑자기 현재로 변해야 하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현재는 과거 없이 쌓이지 않는다. 그리고 미해결 과제는 반드시 현재로 시간 탐험을 한다. 겐조는 이런 부분을 인정한다.


(88) “하지만 내가 만약 오랫동안 감옥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결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88) 과거의 감옥 생활 위에 현재의 자신을 쌓아 올린 그는 현재의 자신 위에 꼭 미래의 자신을 쌓아 올려야 했다. 그것이 그의 방침이었다. 그리고 겐조가 보기에 옳은 방침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방침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지금의 그에게는 헛되이 늙어간다는 결과 외에 어떤 것도 가져오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던 겐조는 잊고 싶던 과거가 그 기반에 있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래서  “학문만 하다 죽어도 인간은 별 수 없지.”라고 이야기한다. 아직 과거의 힘을 느껴보거나 과거를 돌아보지 않은 청년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과거를 마주하며 현재에 집중하지 못한 겐조는 현재 최대의 문제인 경제적 상황과 아내와의 갈등에 무기력해진다. 과거를 바꿀 수 없으니 현재를 바꿀 수 없고, 미래도 마찬가지일 테니깐. 그렇게 과거에 집중하게 된 겐조는 현재의 지나친 신념에 균형을 찾는다.


(192) 겐조는 평소 교육의 힘을 지나치게 믿었다. 지금의 그는 교육의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본능적인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했다.


그의 초점은 다시 미래로 향했다가(‘나는 결국 어떻게 될까?’) 과거로 갔다가(‘하지만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한다. 하지만 다른 것보다 중요한 현재를 간과한다.


(257) 그는 과거와 현재를 대조해보았다. 과거가 어떻게 이 현재로 발전해왔는가를 의심했다. 그런데도 현재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자신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257) 그와 시마다의 관계가 파탄 난 것은 현재 탓이었다. 그가 오쓰네를 꺼리는 것도, 누나와 형과 동화할 수 없는 것도 현재 탓이었다. 장인과 점점 멀어지는 것도 틀림없이 현재 탓이었다. 한편에서 보면 남과 뜻이 잘 안 맞도록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낸 그는 딱한 존재였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드디어 원래 위치에 둔 겐조는 결론을 내린다.


(232) “인간의 운명은 쉽게 끝나지 않는 거로군.”

(287) “세상에 매듭지어지는 일은 거의 없어. 한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하니까 남들도 자신도 알 수 없을 뿐이야.”


〈한눈팔기〉의 원어 제목은 道草(みちくさ)다. 길가의 풀 또는 길 가는 도중에 딴짓으로 시간을 보냄으로 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길을 지나다니며 풀 자체를 의식하지 못한다. 시야에 담기더라도 풀 하나하나가 아닌 초록색 덩어리로 인식한다. 이런 풀을 우리가 앞을 보며 가다가 볼 때 이 행동을 한눈을 파는 것으로 얘기한다. 자기 여친이 있음에도 반대쪽에서 지나가는 여자를 스캔할 때 “한눈팔지마!”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사람은 현재에 산다. 그렇지만 현재를 살지 않을 때가 많다. 기막힌 공상의 세계를 사는 사람이 있고, 과거의 감정에 몰입해 사는 사람도 있다. 겐조가 시마다와 오쓰네와 다시 만난 이후로 보인 모습이 후자다. 이는 현재라는 길을 걸어가지만 시야 안의 풀을 보는 것과 같다. 그럼으로써 현재를 잃는다.


과거는 현재에 중요한 요소다.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겐조의 마지막 말은 그것을 잘 나타낸다. 과거를 잘 대하는 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심리학에서 말하는 미해결 과제(unfinished business)가 끊임없이 괴롭힌다. 잘 대하면 계속 나타나도 현재를 평안히 보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를 잘 대하는 방법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과거를 해결한 뒤에 현재를 잘 살겠다는 생각은 허황되다. 현재 즉, 지금 & 여기(here and now)를 시점에서 유지하면서 지나간 일을 정리해야 한다. 〈한눈팔기〉는 이에 대해 깨우쳐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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