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소설에 기승전결이 있듯이 이 소설집은 처음에는 약한 무거움이었고 그 다음은 조금 약한 무거움이었다. 단편 하나를 거칠 때마다 그 무게가 내 마음을 짓눌렀다. 이 단편집에서 오늘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는 ‘전'에 속하는 이야기다. 내 마음을 지금껏 눈물나게 조여오는 이 단편의 제목은 〈웃는 남자〉다.
이해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 나.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온갖 얽히고 섥힌 것들을 무신경함으로 대하는 자로 여기는 나는 ‘그'를 만난다. 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그의 말에 ‘나’는 얽힌 기억을 끄집어낸다. ‘단순하자, 단순해지자', 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낡아버린 복도식 집에서.
먼저 아버지의 이야기를 상기한다. ‘나’의 아버지는 8년 전까지 목수였다. 아버지는 옳은 일을 한다는 의식이 강한 분이셨다. 당신은 물을 아끼는 게 옳기에 양치질한 물을 모아 변기의 물을 내리셨다. 누군가에게 잘못을 지적당하면 아버지는 유독 격하게 반응하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조금 이해한다.
아버지는 ‘알아?’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셨다. 주로 자신은 알지만 너는 모른다는 의미로 말이다. 아버지는 전쟁고아로 별다른 욕심 없이 자란 할아버지와 다르다는 자부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자신은 자수성가해서 넉넉함을 갖추었다는 자부로 그런 말을 하지 않을까 추측한다. 그런 말을 해도 ‘나'는 아버지를 싫어하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가 비교대상으로 삼은 할아버지에게는 그 자부심 강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점은 이해하지 못했다.
기억은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긴다. 몹시 무더웠던 버스 정류장. 한 노인이 내쪽으로 쓰러질 때 ‘나'는 타이밍 맞게 도착한 버스에 올라탔다. 노인은 쓰러졌다. 그리고 버스는 출발했다. ‘나'는 노인을 걱정하고 한켠에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버스가 좀 더 늦게 왔을 때를 상상한다. 그랬으면 자신은 노인을 살폈을거라는 자기위안과 함께.
이 기억은 이젠 세상에 없는 연인 ‘디디'에게로 옮겨진다. 디디는 ‘나'의 동급생이었다. 친하지 않았던 처음, 조금씩 마음을 열고 다가오면서 둘은 연인이 되었다. 디디는 ‘나'와 같이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옆에서 들이받은 트럭 때문에 죽었다. ‘나’는 디디의 죽음 자체뿐만이 아니라 그때 디디를 잡지 않고 가방을 꼭 쥐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 느낌으로 고통스러워한다. 여기서 ‘나'는 단순해지자는 말을 이루지 못한다.
아버지에게로 다시 초점이 돌아온다. 아버지는 동료를 잃었다. 내가 혜지 아저씨라고 부르던 그분은 교통사고를 심하게 당해 구급차로 옮겨지고 있었다. 그 안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고 계속 말하던 아저씨에게 아버지는 “닥쳐"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저씨는 조용해지고 결국 숨을 거둔다. 어린 딸과 부인에게 한 마디도 남기지 않은 채.
이 사건은 아버지가 유일하게 대놓고 후회하는 일이었다. 왜 그렇게 했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 그냥 아무 생각이…...없었다고 말한다. ‘나'는 기억되돌리기를 통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단순하게 회상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이해의 최종 화살은 ‘나' 자신에게까지 돌아간다.
‘나’는 스스로를 틀어박았다. 암굴 같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은 마치 ‘나'의 마음과 같다. 사건 이후로 무감하게 지내던 ‘나'는 단순함의 길을 걷는 중 날것 그대로의 자신을 발견한다. 자신이 바라보던 벽의 벽지를 찢고 벗겨냈을 때 나타난 흉한 모습, 단단하지 않고 얼룩지고 쉽게 부스러진 형태. 예상과 다른 벽의 민낯은 ‘나'의 솔직한 본모습이었다.
‘나'는 이제 길의 끝에 섰다. 나만이 있는 이 공간에 나를 구하러 올 사람은 없다. 방법은 나 스스로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을 이미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생각해왔다는 마무리는 생각보다 힘찬 어조가 아니다. 단순함으로 나의 어두운 민낯을 보았고, 그로써 아버지를 진실로 이해하게 되었지만 과연 ‘나'는 스스로를 가둬둔 공간에서 거세게 문을 열고 나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독자인 나를 채웠을 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물질을 든 것 같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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