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행
수확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길.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배웅하는 그 모습이 떠오른다. 이별, 다시 볼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는지.
양의 미래
실종된 고교생.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나'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그 고교생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 고등학생은 그저 밖에 있던 남자 어른들이 담배를 사가지고 오라는 부탁을 받고 온 것인데 없어졌다. ‘나'는 그저 서점에서 오래 일했을뿐인데. 그 고등학생은 ‘나'에게 아무도 아니었는데… 실은 아무도 아니지 않았다.
상류엔 맹금류
내가 남자친구와 헤어졌던게 그의 부모님, 누나들, 그 자신을 포함한 가족의 내력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같이 갔던 나들이 때문이었을까? 추억이 많은 연인이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한 지금 이 사건만큼은 명확하게 기억하는 주인공. 그녀에게 인상 깊은 그 기억 속에서 그녀는 그 사람들에게 누군가였을까.
명실
대화가 특별히 많은 것도 아닌데 숙연해진다. 실리의 존재, 그녀가 있었던 흔적을 묘사하는 내용과 ‘나'의 생각, 감정, 느낌, 기억 등. 그것으로 들어가면 실리와 함께한 시간으로 나도 돌아간다. 현재 할머니라는 사실을 잊은 채로.
누가
조용한 곳을 찾아 이사온 나. 그러나 이웃들은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녀가 조용한 집에 살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라는 결론을 내린다. 밤늦게 대문을 열고 고기를 구우면 떠드는 윗집, 개짖는 소리가 나고 시끄럽다며 쓴소리를 들은 횡설수설하는 그 윗집 아주머니, 새로 월세로 계약하는 집이라 도배를 해야하는데 그게 자원 낭비라며 내켜하지 않아하다가 입주할 때 일부만 도배해놓은 집주인 등. 도급으로 빚을 독촉하는 전화 상담원인 ‘나'의 개인적인 삶에서 그녀는 이웃들에게 상처를 받는다. 그렇게 솔직한 말을 감정을 실어 이야기했는데 현관 밖에서는 아랫집 사람이 욕을 하네. 그녀는 그들에게 있어 아무것도 아닌 자였다.
누구도 가 본 적 없는
부부가 유럽으로 여행을 간다. 바르샤바-헬싱키-프라하-베를린의 여정. 하지만 즐거운 여행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어른이 되기 전에 생사를 달리한 아들이 있기 때문. 부부가 한 여섯 번째 여행이지만 모든 것이 꼬인다. 아내가 영어를 못하기에 모든 것을 다 자신이 대변해야하는 남편. 길을 잘 잃어버리는 아내와 남편. 그러다가 여권과 영수증까지 잃어버리는 아내. 그들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꼬이면서 결말은 남편의 책망에 충격 받은 아내가 멍하니 있다가 남편을 두고 출발한 기차 안에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렇지만 아내의 입장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두 사람과 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좋을 듯하다. 이방인, 누구도 그 속을 이해 못하는, 분명 같은 사람의 모양을 하지만 아내도, 남편도, 부부도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람. 단지 언어만이 아니라 속까지도.
웃는 남자
아마도 이 단편이 이 책에 담긴 수많은 강렬한 소설 중에서 가장 내 가슴을 조여온 이야기일 것이다.
이해한다는 말을 믿지 않은 나. 나에게는 그 말은 얽히고 섥힌 이야기들을 멋대로 풀어놓는, 무신경함이 속에 담긴 의미였다. 그러나 나는 ‘그'가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얘기했을 때 놀랐다. 나도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이 솟아나고 그때부터 단순해지자, 단순해지자, 라는 말을 되네이며 과거로 올라간다.
먼저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목공소에서 일하시다가 8년 전에 퇴직하신 아버지는 누군가 자기 생각이 틀렸다고 이야기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양치한 물을 모아서 배변기의 오물을 처리하는 아버지는 물을 아끼는 게 옳지 않냐는, 옳은 걸 한다는 의식이 강한 분이다.
이성친구였던 디디의 이야기가 교차해서 나온다. 함께 지내며 서로에게 편했던 둘. 그러나 디디는 ‘나'와 버스를 타고 오는 거리에서 달려오는 트럭과 부딪쳐 죽는다.
벽. 나는 벽지를 떼어낸다. 벽지를 떼어낸 자리는 흉해 보인다. 그러나 벽의 그 모습을 알고 대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도 벽과 마찬가지다. 속에는 각자의 흉터가 있다. 따개비가 진 흉터일수도, 아직도 피가 고여 있는 상처일수도 있다. 우리는 정말 나 외의 사람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시 아버지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아버지는 안다는 대답을 많이 한다. 그냥 안다는 말이 아니라 나는 알고 너는 모른다는 이야기다. 이 말을 들으면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아오른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강한 태도가 할아버지에게 적용되지 않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 마음은 다시 수그러든다.
디디의 죽음 이야기 전에 버스정류장 에피소드가 나온다. 버스가 도달할즈음에 쓰러진 노인. 그를 두고갔다고 표현하는게 애매할정도였던 타이밍에 나는 버스를 타고 간다. 가끔씩 생각나는 노인. 노인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게 내 탓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길어지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한다. 단순해지지 않는다.
나는 디디의 죽음에 내 잘못을 생각한다. 내 잘못인가? 아니. 그렇지만 그 때의 장면에는 잘못의 유무보다 더 큰 죄책감의 증거가 자리잡는다. 트럭이 달려오던 시점에 디디를 잡지 않고 가방을 잡았던 나의 모습. 당연히 디디를 붙잡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사실이 주는 마음.
그리고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온다. 아버지도 누군가를 잃은 사건을 겪었다. 같이 목공소에서 일했던 아저씨였다. 마찬가지로 트럭이 운전석을 받았다. 아저씨는 신기하게도 의식이 있었고 구급차를 타고 가는 중에도 말을 했다. 조마조마했던 아버지가 가만히 닥치고 있으라고 한 뒤로 아저씨는 의식불명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죽었다. 부인과 어린 딸에게 한 마디도 남기지 못한 채. 아버지는 아저씨에게 닥치라고 한 것을 후회했다. 왜 그 말을 했느냐에는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하던 대로 했다는 것. 패턴 같은 것. 그 시점에 이른 나는 가방을 움켜쥠으로 아버지의 말에 반응한다.
그리고 시점은 다시 내가 있는 어두운 방으로 돌아온다. 디디가 없는 거리, 아버니와 어머니의 소식이 없는 거리. 거리는 소중한 사람을 먹어치웠다. 그것은 이 방도 마찬가지다. 갇혀 버린 나.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는 곳. 오직 내 발로 나가야하는 곳. 나의 마음과 같은 이 방을 나가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이해해본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자기 발로 걸어나가는 걸 생각했다는 마무리는 꺼림찍하다. 이걸 좋은 신호로 봐야할지, 아니면 아직도 걸어나가지 못한 점에 낙담해야할지 모르겠다. 그저 이해한다는 말을 믿지 못했던 시절에서 이해한 시점으로 걸어온 것을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여야할까?
복경
아기 때 조용하게 바닥에 머리를 오래 베고 있었기에 납작해진 뒷통수. 그로 인한 컴플렉스를 가진 나. 이 소설은 ‘나'의 시점에서 특이한 오프닝을 지닌다. 웃음이라는 단어가 셀 수 없이 나오다가 컴플렉스를 가진 사건과 기억과 감정을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 웃는다. 웃는다고 한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그때도 웃는다. 하지만 ‘나'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라는 것을 그녀의 이야기를 보면 안다. 그녀의 매니저는 ‘나'가 자존감 없음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한다. 무시당하는 사람이 자신의 존귀함을 모르기에 하는 반응이 나쁘다고. 거세게 반응할 수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사과한다고. 그렇지만 ‘나'는 계속 죄송하다고 하고 그러면서 웃는다. ‘나' 자신이 웃는게 맞는지 다른 사람이 경험하는 스스로의 웃음이 어떤지 묻지만 그 어조에 담긴 감정은 미칠 것 같은 자신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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