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아닌〉 리뷰
[평점 9.0/10]
아무도 아닌. 이것을 사람들은 대개 “아무것도 아닌”으로 읽는다, 라고 책은 시작한다. 심지어 차례가 나오기도 전이다. 허를 찌르는 이 말을 잠시 생각해보니 나도 그랬다. 아무도 아니라는 게 너무 익숙하지 않았다. 대상이 사람임에도 나는 “아무것도 아닌”으로 읽어버렸다. ‘너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처럼.
의문이 들었다. 작가는 분명 두 표현의 차이를 유의미하게 보았다. 그리고 “아무도 아닌”의 손을 들어주었다. 왜 그랬을까? 또 나는 왜 “아무도 아닌”과 친숙하지 않은걸까?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 책에 답이 있다는 건 확실했다.
이 책은 총 8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다. 상행, 양의 미래, 상류엔 맹금류, 명실, 누가,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웃는 남자, 복경은 “아무도 아닌”으로 연결되었음이 틀림없다. 각 단편을 아주 짧게 요약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 있다.
2019/01/15 - [책리뷰] - 아무도 아닌 속 단편 짧은 요약
여덟 단편은 모두 어두운 분위기를 내뿜는다. 모두 누군가를 떠나보내거나 잃어버리거나, 누군가가 잊혀지거나 없어지는 부재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자잘한 장면 속에서 이 누군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도 아닌” 사람으로 여겨진다. 화자는 그 기억을 되짚는다. 1인칭이든 3인칭이든 마찬가지다. 그녀/그/나는 이 사실을 괴로워한다. 하지만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없다. 이미 부재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체념은 부재한 자를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는 타자의 태도를 석연찮지만 받아들이게 한다.
“상행”에서 남겨진 할머니, “양의 미래”에서 행방불명된 소녀, “명실” 속 세상엔 없는 친구 실리, “누구도 가본 적 없는”에서 기차에서 내리지 못해 떠나게 돼버린 아내는 잊혀진 기억의 일부가 된다. 이들은 타인에게 존중받지 못했다. 한 사람으로 대우 받지 못했다.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의 현실이었다. 사람이 사람이 아닌 대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과 더 친숙한 듯 싶다. 대상이 사람이라면 사람에 맞는 단어를 쓰는게 맞을 터였다. 나조차 그러지 않았다.
그렇지만 더 무서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실제로 부재하는 주체가 바로 나(화자)라는 사실이다. 사회적으로 없어지거나 남겨진 사람을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겼다는 자각의 충격이 가시기 전에 더한 게 온 것이다.
“상류엔 맹금류”에서 이제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 나, “누가”에서 고요를 찾아 이사를 왔지만 그것을 빼앗긴 그녀, “웃는 남자”에서 허름한 공간에 스스로를 갇아둔 나, “복경”에서 웃음의 가면 뒤에 있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의 주체이자 피해자다.
화자는 관찰자에서 피해자의 입장이 될 때 현실에 저항한다. 저항은 가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대부분 소극적이다. 마치 수족관의 물고기가 유리에 몸을 부딪히며 존재를 알리는 것과 같다. 그걸 보는 사람들은 물고기의 부딪힘을 고려조차 안한다. 소설은 주로 해결되지 않은 현실을 마지막으로 보여준다. 약간의 희망적인 결심과 함께.
결국 작가는 “아무것도 아닌”, 부재한 존재들을 사람에 맞는 단어로 격상(?)하는 방식으로 저항하는 듯하다. “아무도 아닌”이란 표현도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세태 고발의 성격이라면 이 정도는 적절하다. 적어도 사람임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를 가지려는 결심이 느껴졌다.
소설은 내게 무거움을 각 단편을 거치면서 가중시켰고, 내 마음을 짓눌렀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식으로 사람을 부재중으로 만드는 모습이 있었기에 반성을 했다. 나 외의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여겨지는 모습이 슬펐다. 사회의 그런 태도에 절망했고, 분노했다. 이런 감정의 혼합물이 나를 눌렀다.
이젠 표지만 보아도 이 혼종이 올라온다. 이 강렬한 느낌이 그립다. 반드시 읽어보길 추천한다.
'책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구나 화려한 벽지 뒤에 숨긴 흉측한 벽이 있다, 〈아무도 아닌〉 속 단편 "웃는 남자" (0) | 2019.01.16 |
---|---|
〈아무도 아닌〉 속 단편 짧은 요약 (0) | 2019.01.15 |
[책 리뷰] 여행으로 녹아버린 형제의 마음, 오해와 진정한 해결이 대한 그래픽노블 <코메 프리마, 예전처럼> (0) | 2019.01.14 |
[간단 리뷰] 다시 만나는 형과 동생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코메 프리마, 예전처럼> (0) | 2019.01.13 |
<춤추는 사신> 줄거리 카드 리뷰 (0) | 2019.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