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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가 죽기 4년 전부터 연재한 <춘분 지나고까지>



짧은 서평

“내것이 아닌데도 가지고 가야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주는 소설이었다.

<춘분 지나고까지>는 소세키가 단순히 연재를 춘분 지나고까지 하겠다는 의미로 지은 제목이다. 스스로도 허망하다고 얘기하는 제목이지만 그는 소설을 구성하면서 즐거워했을 듯 싶다. 단편들이 하나의 장편으로 연결되는 상상을 이 책을 통해 이루었기 때문이다. 짧은 지식이지만 아마 이런 형식을 현재의 예 중에 적절히 볼 수 있다면 그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어벤저스>시리즈일 것이다. 이 시리즈와 비교하면 소세키의 책이 서술하는 장소의 규모나 역동성은 새 발의 피와 같다. 하지만 그 영화를 넓고 얕게 사귀는 친구로, 이 책을 깊고 좁게 사귀는 친구로 보면 괜찮을 듯 싶다.

소설은 여러 단편으로 이루어져있다. 등장하는 인물은 매우 많지 않아도 다양한데, 그중에서 게이타로를 기억해본다. 그가 주인공이든 카메오든 모든 단편에서 출현하기 때문이다.

게이타로가 주인공일 때 그는 한 점술가에게서 조언을 받는다. “자기 것 같기도 하고 남의 것 같기도 한, 긴 것 같기도 하고 짧은 것 같기도 한, 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한 물건을 가지고 있으니 그걸 제일 먼저 잊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게이타로는 그것을 이전에 미스테리한 사람이 주고갔던 뱀 머리 지팡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그는 모든 단편에서 그것을 지참한 채 등장한다.

하지만 뱀 머리 지팡이는 그저 구체적인 상징물이었던 것 같다. 점술가의 조언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자기 자신의 다양성으로 보인다. 우리 안에는 나라는 경계가 명확히 있는 것 같은 동시에 내것이 아닌 것도 나 안에 포함되어 있는 느낌이 있다. 예를 들어 나로부터 시작되지 않은 듯한 말의 표현이라든가 제스처라든가 생각이라든가 하는 것들이다. 또는 화, 질투, 죽이고싶은 마음 등 도저히 내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지않은 것들도 있다.



게이타로를 포함한 소설 속 몇몇 인물은 “그것들은 내가 아니다”라는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나이기도 한데”라는 고민을 보관하고 있다.

이 생각까지 오니 결이 다를 수는 있어도 내가 좋아하는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 떠오른다. 내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서 절망하고, 내가 자기 자신이라서 절망한다는 기막힌 통찰. 원하는 모습의 내가 아닌 나도 싫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도 싫은 이상한 시소게임을 깊은 내면에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춘분 지나고까지>의 점술가는 마치 ‘그게 그냥 너꺼니깐 잊지마’라고 쿨하게 조언하는 듯 싶다.

이 책을 쓰는 때 소세키는 “그저 나다운 작품을 쓰고 싶다”고 했다. 아마 이 책은 소세키가 유명세를 따라 붙은 꼬리표들을 개의치 않은 채 자신의 뱀 머리 지팡이를 잊지 않으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줄거리

대학을 최근에 졸업하고 직업이 없이 살던 게이타로는 같은 하숙집의 기관사인 모리모토를 알게 된다. 어느날 모리모토는 뱀 머리 지팡이를 둔 채 소리없이 중국으로 떠난다. 그는 나중에서야 지팡이를 기념으로 준다는 편지를 남긴다.

게이타로는 친구 스나가로부터 그의 이모부를 만나볼 것을 권유받는다. 일을 소개받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게이타로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기도 하면서도 우유부단함을 이겨내고파 다구치를 찾아간다. 그렇지만 첫 번째 약속은 어이없게 문 앞에서 취소되고 게이타로는 자신이 기껏 결심하고 간 결과에 허무함을 느낀다.

일상의 경험 속에서 다시 자기반성을 한 게이타로는 자신의 운을 시험하고자 점술가를 찾아간다. 그는 “자기 것 같기도 하고 남의 것 같기도 한, 긴 것 같기도 하고 짧은 것 같기도 한...”것을 잊지 말라는 조언을 받는다. 게이타로는 그것이 모리모토의 뱀 머리 지팡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다구치를 찾아간다.

이번에는 다구치에게서 시범적인 일을 받았다. 정류장에서 어떤 남자를 확인해보라는 것이었다. 게이타로는 우여곡절 끝에 남자를 찾아냈고 더불어 그와 함께한 여자를 발견한다. 개인적인 호기심에 둘을 미행한 뒤 다구치에게 보고한다.



게이타로가 미행한 남자는 다구치의 처형이었다.면대면으로 직접 보면 떳떳하게 알 수 있다는 게이타로를 인정하며 다구치는 그를 처형에게 보낸다.

처형인 마쓰모토와의 약속도 처음에는 깨졌다. 비가 오는 날에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게이타로는 이후 마쓰모토를 만나 미행한 사실 등을 투명하게 꺼내놓는다.

어쩌다보니 스나가의 친족들을 알게 된 게이타로는 친구와 함께 있는 여자의 정체도 알게 된다. 그 여자는 스나가의 이종사촌인 지요코였다. 하지만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있었다. 그 정체에 대해 스나가는 과거의 일을 털어놓았다.

스나가의 어머니는 아들을 지요코와 결혼시키고 싶어했다. 지요코도 스나가를 친오빠처럼 좋아했다. 하지만 스나가는 지요코의 마음을 알지만 경계를 두었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지요코의 결혼 상대에 대한 질투심이 있음을 깨닫는다. 애매한 흐름 속에서 지요코는 스나가를 비겁한 사람이라고 팩폭을 날린다.

내면에서 엇갈린 자신의 모습에 고민하는 스나가는 외삼촌 마쓰모토를 찾아간다. 거기서 자신의 어머니가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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