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반응형

 

 

 

 

 

 

가스라이팅. 좀 더 흔히 들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지만 실은 일부만 알고 있는 단어. 그 일부 중에서도 일부는 이 개념이 내포한 미묘한 뉘앙스와 전제를 알지 못한 채 사용하는 단어.

 

그럼에도 중요한 점은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들은 이 개념조차 모른 채 지금도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이다.

 

흔히 들어본 "가스라이팅"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상대방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상대방의 행동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행위”
“상황이나 심리를 교묘하게 조작해 정서적으로 상대방을 조종하려는 행위”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정서적 학대”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를 읽은 후 인터넷을 통해 찾아본 정의다. 일부 sns와 책 소개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것이 저자인 로빈 스턴 박사의 의도와 목적이 담긴 개념으로 보이지 않았다. 맞는 말이지만 부분적인 진실만 포함한 것으로 보였다.

 

스턴 박사는 "가스라이팅"을 이렇게 정의한다.

“가스라이팅은 자신이 항상 옳다고 여기며 자존심을 세우고 힘을 과시하는 ‘가해자(가스라이터gaslighter)’와 상대방이 자신의 현실감을 좌우하도록 허용하는 ‘피해자(가스라이티gaslightee)’ 사이에서 일어난다.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이상화하고, 그들의 인정이나 사랑, 관심이나 보호 등을 받기 위해 가해자가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에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허용한다. 가스라이팅은 성별에 구분 없이 모든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다.”

가스라이팅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하는 행위다. 의식의 여부, 의도의 여부와 상관이 없는 게 가스라이팅이다. 가해자는 매력적이거나 선량하거나 난폭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에서 저자는 가해자는 물론 피해자의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그녀 자신이 가스라이팅의 피해자이기도 하면서, 자신의 내담자(상담 받는 사람)들이 이런 부류의 대우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가스라이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원천적인 힘을 길러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피해자 비난하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데, 왜 저자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꺼내야했을까?

 

핵심 이유는 "가스라이팅 상황에서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의 행동뿐"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가스라이팅의 3단계 중 1단계에서 가해자와 맞서 싸우기도 한다. 상대가 가진 자신에 대한 개념을 고쳐놓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도 가지고 있기에 서서히 상대가 부여하는 정체감에 녹아든다.

 

스턴 박사는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에서 장단 맞추기나 말싸움을 피하라고 조언한다. 간단하다.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반드시 인정받아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정 욕구는 모두 있지만, 내 생각, 감정, 판단을 버리면서까지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다. 피해자의 내적 우선순위가 뒤바뀌어 있는 사실이 그들을 취약하게 만든다.

 

인정 욕구가 강하고, 그것을 타인의 기준으로 채우려는 사람들은 가스라이팅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기 마련이다.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고 격리시키는 게 아니다. 피해자가 스스로의 기준으로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우선순위를 가지도록 돕는 게 궁극적인 해결책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해자에 대해서 피해자와 제3자는 어떻게 해야할까?

 

가스라이팅이 일어나는 관계는 피해자가 정죄를 내리기 힘든 관계이다. 앞서 간략한 정의 중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정서적 학대"를 보자. 제3자는 가해자를 판단하기 쉽지만, 당사자는 그게 어렵다. 가스라이팅에 당해서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가스라이팅이 일어나는 관계가 친밀함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스라이팅을 발견해내기는 어려움이 있다. 저자는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이 가스라이팅의 유일한 단서”라고 말한다. 동굴 속 아주 희미한 불빛을 가지고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막연한 느낌은 오해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걸 느낀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할 것이다. 그 관계에 가스라이팅이 있는지, 없다면 어떤 식으로 소통하며 관계를 정립해나갈지를 알 수 있을 테다.

 

제3자의 역할에 대해서는 책에서 단서를 찾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제3자야말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피해자 비난하기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그녀가 어딘가에 묻어둔 자신의 감정, 생각, 현실감 등을 찾을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할 듯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