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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과하는 그것

category 일상의 생각 2017. 3. 1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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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년을 돌아보면 자동차가 드리프트하는 듯한 급한 변화가 내 삶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본다. 전공이었던 상담심리와 사회복지 대신에 디자인을 배워 현재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모습은 급진적이다. 생각의 측면에서는 가능성, 포용의 폭이 넓어졌다. 절대 우리나라 기업환경과 문화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취업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나였다. 하지만 취업조차 이제는 하나의 가능성을 넘어선 선택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내면적인 변화는 물론, 외적인 상황도 변하고 있다. 후자는 전자보다 그 속도가 느리고 알아차리기가 어렵지만 오늘 한 가지 상황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 가족과 관련이 되어 있다.


약 10여년간 우리 가족은 정기적인 수입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명예퇴직을 하신 뒤 신학대학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재정적인 염려가 발목을 잡아왔다. 가장으로서, 부모로서, 또는 어떤 위치에 있는 개인으로서 목적을 분명히 하시고 목표를 세워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교회를 개척해보시기도 하셨고, 어떤 교회에 교역자로 있으시기도 했다. 최근에는 현재 사는 곳을 매매하고 새로운 곳으로 가고자 하는 여러 노력을 보이셨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은 존경할만한 것이었다. 이제 예순이 되어가시는 때에 아무리 평균수명이 늘었다고 하더라도 도전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사람을 보는 시선은 달라진다. 그것만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자신의 뜻을 최대한 따라서 가려는 태도 저변에 감춰둔 욕망을 알고 계셨다. 충분히 갈등으로 불이 붙을 수 있었음에도 밀당을 통해서 아버지께서는 어머니가 최대한 자신의 뜻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그것에 함께하도록 노력하셨다. 강요가 아니면서 상대방을 존중하려는 모습은 한 인간으로서 본이 되는 모습이다.


아버지의 여러 존경스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의 모습에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점차 커진다. 예를 들어 어머니께서는 조금 더 깊이 있는 당신의 욕구를 드러내지 못하신다. 그 욕구는 아버지의 뜻과는 다른 것이고 따라서 어머니의 모습에서 억지로 따르는 태도가 선명하게 보인다. 양가감정일 것인데 이러한 두 가지 생각 중 하나는 건드리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다. 드러나지 않은 채 일을 진행했을 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데 최근의 상황이 그런 것이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홀로 일하신다. 그리고 홀로 계신다. 그의 앞에는 엄청난 벽이 있다. 자신은 자유롭게 오고 나가면서 타인이 들어오는 것에는 크나큰 경계를 하고 있는 그런 모습이다. 원칙이 있어서 좋지만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벽을 쌓아오신 것이다. 그런 아버지는 비평가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근거 있는 비평을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얻지는 못한다. 존경스러운 시선은 받을 수 있지만 본받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진 못한다. 머리로 아는 사람에서 행동하는 사람으로 조금씩 스스로 노력하지만 아무도 그 노력을 알아줄 수 없다. 그저 개인적인 신앙일뿐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가족을 대할 때 많이 노력하신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아버지의 벽을 넘어서기는 어렵다. 그의 방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다. 그가 내 방에 들어와 한 마디라도 해보려고 하는 모습은 눈물겹지만 안타깝다. 그가 어머니에 대해서 부탁하는 말은 옳은 말이지만 듣기가 싫다. 그의 말은 사람을 얻을 수 없다.


영향력이 없는 아버지의 곁에는 이제 아무도 없다.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만 하면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이론이 있겠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과 같이 살아가야 한다. 그게 사람과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과 연관된다. 아버지는 매일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과 관계를 맺겠지만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없다. 그에게는 넓은 지식과 판단력, 분석력, 기획력 등이 있지만 그것은 실제가 되지 않는다. 도리어 그를 보면 외로움이 서려있어 보인다. 내색은 하지 않는다. 외롭냐고 물어봐도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고독한 것은 사실이다. 아내조차 그의 뜻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같이 가고자 하지 않는다. 큰 어려움이다.


누나는 집 안의 집에서 산다. 퇴근하고 와서, 주말에는 집에 거의 없거나 문을 잠그고 자기 할 일에 집중한다. 오늘은 친구네 집에서 커플끼리 파자마파티를 하기에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는 아버지 어머니 누나 그리고 나는 개인이 되었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도 받지도 않으려고 하는 가족이 되었다. 누나는 점점 우리 셋에게서 멀어진다. 그나마 내가 누나와 가장 가깝다. 어머니는 스스로를 가둔다. 아버지도 스스로를 가둔다. 두 분은 서로가 서로에게 사슬이 된다. 서로의 발목을 잡는다. 그것을 알아도 해결할 수 없다. 


왜?


기본적인 것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성이다. 솔직함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매력이다. 그것은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사회에서 어느 위치를 차지하고 있느냐가 아니다. 그것은 심지어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느냐도, 어떤 목적을 가졌느냐도 아니다. 그것은 그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것이다. 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용납하는 단계가 생략되었을 때 온갖 고급 능력과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다가올 수 없는 존재가 된다. 그런 존재가 우리 집에 4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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