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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같으면서 르포 같았던 책이었다. 작가의 사실적 묘사와 전개에다 취조 및 취재 과정에서 인물들이 이야기하는 형태가 재미의 주 요소였던 듯 하다.

 

아무래도 작가의 시각으로 쓰였다보니 소설의 표현에서 작가의 의도나 어조를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작가는 언론의 비사실적인 표현이 어떻게 폭력이 되는지를 잘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폭력이 폭력을 낳는 과정을 나름의 귀인 과정을 통해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카타리나가 애인을 숨겨주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는 제목과 소설의 내용을 통해 큰 의미에서의 언론과 그것의 폭력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부제를 첨가하면서 이것이 단순히 언론이라는 주체만 해당하는 점이 아니라고 암시한다. 과연 폭력은 언론, 미디어에서만 생산되고 배포되는가?

 

중요하게 봤던 점은 폭력의 주체 그 자체가 아니라 폭력의 방식이었다. 언론의 폭력을 조금 제한적이지만 한 단어로 치환하면 오도다. 오보가 아니다. 오도는 거짓임을 알지만 하는 의도적인 행동이다. 이 안다는 상태가 완전 의식적인 것도, 완전 무의식적인 것도 아닌 듯하다. 

 

폭력의 주체가 아닌 방식에의 집중은 작가의 문제제기를 내 옆의 현실로까지 옮겨오도록 돕는다. 폭력 이야기는 회사생활, 친구관계 등 가까운 곳에서 들을 수 있다. 이것이 일대 일이 아니라 다대 일이 되는 순간, 즉 정치적인 맥락에 놓이는 순간 한 사람이 취할 수 있는 대처법은 극도로 제한되고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그렇게 해서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느낀다.

 

굳이 언론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될 듯하다. 언론 대신 소문으로 단어를 바꿔보자. 이제 우리가 소문의 희생양이 되거나 다른 사람이 소문의 희생양이 된 경우를 떠올려보면 된다. 단적인 얘기로 왕따나 학교폭력은 다대 일의 균형으로 전개가 된다. 악플도 마찬가지다. 악플과 선플의 대결이 아니라 악플의 대상과 악플들의 대결이 된다. 루머는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 서있다.

 

돌아가보자.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내용에 따르자면 작가는 분명 시대적이면서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이 책을 지었다. 그렇기에 그 시대와 사회에 한정해서 보는 것도 중요하다. 반면 시대적인 것은 동시에 진리에 가까울 수 있다. 그렇기에 큰 의미로 확대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이 책의 사회적 맥락의 원형이 2020년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에, 또는 내 회사에, 내 친구들 사이에, 온라인에, 크고 작은 형태의 모임에 적용된다고 본다. 그리고 책이 쓰여진 79년(?)부터 현재까지 어디서든 끊기지 않고 나타났다고 본다.

 

단지 카타리나처럼 총을 쏜 사람보다 다른 대처법을 택한 사람들이 많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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