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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영하는 사람(human of projection)

category 일상의 생각 2020. 7. 26.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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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Pim Chu on Unsplash

 

우리집 고양이 이름은 “제이”다. 집사는 우리 누나, 나는 제3자. 둘 이외에 집 구성원은 없다.

오늘은 두 인간이 거릐 하루종일 집에 없었다. 집사는 일요일임에도 출근을, 제3자는 오랜만에 외부 약속이 있었다. 가장 먼저 집에 들어온 제3자의 도착 시간은 10시 30분. 자그마치 오후, 즉 밤이다.

평소라면 미등이라도 켜져있어야 할 방이 컴컴했다. 제이는 어둠 속 현관 빛을 보고 문 앞까지 와있었다. ‘녀석, 참 외로웠겠구나.’ 다른 고양이라도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형편의 한계가 아쉽다. 물론 외로웠을 거라는 추측도 다 내 개인이 내포된 허상일 수도 있다.

제3자인 나는 오랜만에 무리를 만나고 왔다. 코로나19로 인해 애 있는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었다. 5명이 모인 오늘도 평소처럼 주로 듣기만하고 돌아왔다. 그렇지만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내가 그 무리에서 지분을 얼마나 차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나는 존재를 격하당하는 대우를 대부분 겪지 않기에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충분히 즐거움을 느낀다. 아, 참고로 나는 내향형 인간이다.

고양이 제이가 실제로 어떻게 느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투영”이라는 건 그만큼 재미있는 인간의 기술이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다짜고짜 자신을 상대에게 집어넣는다. 그걸로 피해를 보는 사람과 그걸 즐기는 사람도 있다.

결국 자기만족으로 나는 보지만 투영의 기술이 없다면 과연 사람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솔직하게 사실만 말하는 사회성 없는 나는 보통 이렇게 말한다. “그렇군요” 이후론 말이 없다. 속에서 올라오는 판단의 생각을 억누른다. 아마 투영이 없다면 판단도 하지 않을 듯하다.

여하튼 인간은 투영을 한다. 그로부터 유익을 얻는 사람이 있다. 합리적인 해석을 줄 수 있지만 단지 여러 가지 중 하나일 뿐. 자기가 왜 투영을 하는지는 잘 돌아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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