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적인 성향이다 혹은 낙관적인 성향이다...
보통 낙천적이라는 말을 쓰기에 "낙관적"이라는 단어와 동일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사전에서는 두 가지를 이렇게 본다.
낙천적 : [관형사·명사] 세상과 인생을 즐겁고 좋은 것으로 여기는. 또는 그런 것.
낙관적 : 인생이나 사물을 밝고 희망적인 것으로 보는. 또는 그런 것.
두 단어는 매우 비슷하기에 충분히 헷갈릴만하다. 사전적 정의에서 내가 본 차이는 이렇다. 즐거움에 초점을 두는 게 낙천적이 지닌 의미이고, 희망에 초점을 두는 게 낙관적이 지닌 의미다. 사람으로 치면 이럴 듯하다. 가진 게 없어도 즐거워하는 사람과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미래가 반드시 밝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이다. 전자는 현재에 더 초점을 두고 있지만 후자는 미래에 더 초점을 둔다.
그렇다고 후자가 이상주의자라는 말은 아니다. 진정한 후자는 현재를 살아가면서도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어려운 상황이라도 희망을 갖는다. 현실을 알고 체감하는 사람을 이상주의자라 할 이유가 없다.
오늘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에서 마스다 씨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좋은 상황이 계속 되더라도 반드시 어려움은 찾아온다. 돈이 없어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거나, 사업을 계속 운영하기 어렵다거나, 누군가에게 쫓기는 등 절망과 좌절의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은 두 부류로 나눠진다. 하나는 비관적인 사람, 다른 하나는 낙관적인 사람이다.
비관적인 사람은 아무 생각이 없다. 그렇게 된 이유는 절망과 좌절을 주는 상황이 너무 극적이거나 심해서로 보통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비관적인 사람이 추적한 이유다. 그가 아무 생각이 없었던 이유는 자신이 추적한 이유에 동의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 그런 자신을 정당화하며 세상 혹은 남탓을 한다.
무엇보다도 비관적인 사람은 미래의 일이 어떻게 될지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펼쳐 놓는다.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을까, 저렇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그리고 자기가 할 일을 찾지 않는다.
낙관적인 사람은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고 애쓴다. '어떻게 하면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란 생각을 기초로 행동을 한다. 아이디어가 나오면 실행한다. 다양하게 실험하면서 그가 의지하는 것은 희망이다. 언젠가 반드시 이 터널을 빠져나갈 것이라고. 그러면 비관적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상황이 반전된다. 계획이 과정 중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작은 씨앗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게 될뿐더러 직접적인 반응이 달라지는 걸 본다.
비관적인 사람은 낙관적인 사람이 처한 상황의 변화를 외부의 탓으로 돌린다. 그가 얼마나 노력했을지를 생각하지 않으면서 깎아내린다. 그래서 비관적인 사람은 비난하는 사람이 된다. 판단하는 사람이 된다. 끝까지 자기 손의 쌀을 놓지 않는다.
내게 "당신은 낙관적인 사람입니까, 비관적인 사람입니까?"하고 묻는다면 나는 일단 "그건 이분법적 태도고요."라는 말을 할 것 같다. 그렇지만 순순하게 인정할 것 같다. 나는 비관적인 사람에 가깝다고.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비관적인 사람의 모습 그대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낙관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엔 비관에 굴복한다. '이 사업이 망하는 게 아닌가?', '여기가 아니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지?', '이젠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 등 내 마음 속에서는 수많은 생각과 번민과 걱정이 올라온다. 그리고 행동보다 비관이라는 감정에 갇혀서 살아간다. 그게 내가 주로 취한 노선이었다.
남탓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경향을 없애기에는 매우 어려웠다. 마치 본능과 같았다. 남을 평가하며 그가 잘 되지 않은 이유나 잘 된 이유 등을 상황으로 귀인하면서 내 삶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내 삶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랬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스다 씨는 낙관적으로 살 것인지, 비관적으로 살 것인지는 의지에 달려있다고 한다. 그리고 낙관적으로 사는 삶의 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웬만한 개똥철학을 가진 나이지만 마스다 씨의 말을 그냥 넘겨들을 수가 없다. 그는 실제로 비관을 극복했고, 낙관적으로 살기 때문이다. 그런 태도가 츠타야 서점이라는 결과물로 나왔고 그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비관을 극복한 경험 없이 생각에 갇혀 사는 내가 이 사람은 원래 쉽게 비관적 상황을 이겨낼 수 있었다거나 상황이 좋게 흘러 갔다거나 하는 식으로 내려버릴 수 있을까? 없다.
그렇기에 오늘의, 조만간의 중요한 결정에 있어서 내가 반드시 해야할 행동은 이거다. 생각한 것을 해보는 것, 목표가 없다면 목표를 세우는 것, 일단 한 번 작은 거라도 해보는 것이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은 그 작은 것들 중에 속해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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