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 하루에 한 챕터씩 읽는 마스다 무네아키 씨의 글.
오늘은 음악에 관한 이야기다.
"음악은 여전히 중요하다"라는 제목으로 마스다 씨가 라디오방송국 관계자와 미팅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확히는 미팅 중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가 음악을 대한 태도,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 라이프스타일을 추천하는 츠타야의 철학 등을 들려주었다.
다른 글보다는 조금 길었는데 나는 요 부분에 꽂혔다.
인생을 사는 사람은 누구나 고달프다. 그렇지만 유독 청년들이 더 힘들어한다. 아이들도 자기네들 사회가 있어서 그 속에서 격리를 당하거나 정치적 휘말림을 겪기는 한다. 그래도 주로 현실적인 문제를 종합적으로 강하게 맞닥뜨리지는 않는다.
청년은 미지수를 본다. 기로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연애, 결혼, 취업 등 사회적인 이벤트가 널려 있다. 정신적으로는 아이들보다는 더 성숙하지만 경험적이기보다 이론적으로 성숙하다. 단순하게 말하면 독립의 초입 또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음악은 도피처의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음악은 영감의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음악은 대변인의 역할을 한다.
어른은 독립한 존재다. 그조차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 의존증세를 보일 수는 있다. 그래도 단단함이 있다. 그래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 그것이 덜 아프게 가능한 사람이 어른이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에 음악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청년의 시기에는 감각을 만족시켜주는 것들은 조건반사식으로 받아들인다. 음악은 그중에 하나다. 음식도 그중에 하나다. 그래서 맛집 블로그의 대부분은 젊은이들이 운영한다. 대중음악 중 유행하고 문화를 만드는 것들은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인 경우가 많다.
마스다 씨는 음악을 매일 듣는 것 이상으로 각 사람에게 맞는 음악을 추천하는 것을 추구한다. 회의에서 만난 라디오방송국은 단순한 방송국이 아니라 좋은 음악을 선별하는 "감정력"을 지닌 고수다. 이 고수의 브랜드는 뛰어난 감정력을 기반한 정확한 추천으로 굳게 서 있다. 이런 점을 마스다 씨는 주장하고 싶어한 듯하다.
내가 위 글이 마음에 와닿았던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그건 아마도 내게 음악이 필요한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일을 하면서 가끔 유튜브에서 라이브로 방송하는 재즈 채널을 듣는다. 그러나 매일은 아니다. 오늘 나는 스마트폰 어플 중 자연의 다양한 소리를 들려주는 것을 사용했다. 거기서 캠프파이어 소리의 볼륨을 중간으로 맞춘 뒤 이어폰을 꼈다. 장작이 타고 불꽃이 튀는 소리가 반복적이지 않게 들려왔다.
내가 들은 음악은 가사가 별로 없다. 그래서 가사가 있는 음악 중 무엇을 좋아하나 생각해봤다. 단번에 윤종신 씨의 음악이 떠올랐다. 내게는 최고의 뮤지션이다. 근데 주로 이별 노래가 많다. 이별 노래가 현재 내 상황에 딱히 맞지는 않는다. 딱히도 아니다. 아예 맞지 않다. 일단 나는 없으니깐...
소통의 진수는 그 속의 끝을 보는 것이다. 내가 이별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게 내게 음악의 가치가 되지 않을까?
나는 단지 단단히 굳은 내 감정을 푸는 데 있어 이별노래가 필요한 것 같다. 아 그리고 연인의 이별 밖을 생각해보면 다른 이유가 있는 듯하다. 외로움. 주변에 도와줄 자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 그렇지만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기억. 이별 노래는 그때의 기억과 현재의 감정을 이어주는 느낌이다.
각 사람, 어쩌면 이 쓸데없는 글을 읽는 사람에게 음악은 어떤 가치를 지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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