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반응형

대학생 시절, 학교 버스는 구절양장인 도로를 거쳐서 육거리까지 갔다. 아무래도 오고 가는 길이 험하다보니 흔히 인싸라고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놀러 나가곤 했다. 학교 내부와 기숙사에 주로 있던 내가 외부로 나오던 때는 MT나 고향 집에 오갈 때 뿐이었다.

 

그래도 나를 바깥으로 끌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커피의 오묘함을 가르쳐준 부류가 있다. 지금은 그나마 나아졌지만, 어린 시절에는 커피의 용도가 오로지 카페인에 있다고 여겼다. 시험 기간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음료. 요 정도로 취금했었다.

그런 내가 커피에도 세계가 있고, 깊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카페 "아라비카"를 만나게 되면서라고 기억한다. 이번에 7년 만에 포항에 다시 가면서 위치가 두호동으로 바뀐 걸 알게 되었다. 원래는 환여동의 큰 횟집 옆 건물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의 기억을 짧게 풀어본다. 커피의 원두가 다양했고, 그 원두들을 추출한 맛도 다양했음을 메뉴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가게에는 이상한 기계가 있었는데 거기서 커피를 만든다고 했다. 사실 내 시선에 꽂힌 건 바다가 보이는 자리 뿐이었다. 이전에는 일반 프랜차이즈 카페만 갔었기 때문에 바다를 보면서 커피를 마시는 걸 상상할 수 없었다. 황토색인지 주황색인지 하는 색이 대부분이었던 내부 공간은 어떤 분위기를 담고 있었다. 아라비카에 대해서는 대략 이런 느낌을 지니고 있었다.

오랜만이지만 짧은 1박 2일의 여행이기에 꼭 아라비카에 방문하려고 했다. 일행보다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는 시간에 갈 곳 1순위가 여기였다. 하지만 지도에 검색해도 환여동에서는 아라비카가 나오지 않았다. 이름이 틀렸던 것일까 아니면 문을 닫은 것일까...

 

바뀐 아라비카를 방문하게 된 건 카페 "오브레멘"에서 나와서였다. 빵은 맛있었지만 시그니처 커피에 실망했던 내게 일행은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했다. 그저 개발자로서 하루에 3잔 이상 마시기 때문에 가자는 거였다. 어떻게 검색을 했는지 바로 옆에 아라비카가 있다며 거기에 가자고 했다.

 

메뉴판의 왼쪽 하단 빨간 글씨 참고!

여기가 이전에 환여동에 있던 아라비카가 맞을까. 오래된 기억만 가진 내게 증거가 되었던 건 메뉴판이었다. 물론 예전의 메뉴판은 기억에 없다. 남겨둔 사진이라도 있으면 비교라도 했을 테다.

메뉴판에는 커피의 여러 종류가 나와 있다. 요즘에는 커피를 깊게 좋아하고 탐구하는 일반인들이 많아 그런 카페가 많이 있다. 내가 거주지 근처에도 원두와 브루잉(? 난 용어 잘 모른다) 등 커피의 대부분의 과정을 한 공간 안에 옮겨 둔 데가 있다. 그런 곳의 메뉴판은 원두나 맛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

아라비카의 메뉴판도 마찬가지였다. 농장과 지역과 품종과 프로세싱이 하루에 3~4잔씩 습관적으로 마시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정보일까. 이런 디테일한 정보들을 담은 메뉴판을 보면서 첫 번째 증거를 얻었다.

 

곁들이는 음식 종류는 적었음

 

 

두 번째 증거는 원두 관련 프로세싱 장비들에 있었다. 앞서 말한대로 원두 취급까지 하는 곳은 요즘엔 이미 많다. 자체적으로 볶아서 판매하기도 한다. 내 기억 속 아라비카가 그때도 이런 기계를 통해 원두 취급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커피에 진심이려고 하는 이미지는 확실히 기억한다.

 

안에서 사장님이 어떤 프로세싱을 하고 계셔서 사진을 찍진 못했다. (기억에 왜곡이 있다는 점을 명심하더라도, 사장님이 어디서 본 기억이 난다. 이것이 사회심리학인가...) 그래도 원두가 처리되고 있는 소리와 장비, 재료들에서 예전 환여동에서의 느낌을 받았다.

 

일행은 먼저 올려보냈다. 가위바위보에서 내가 져서 남았다. 좋은 기회였다. 대신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나중에 올라가보니 손님이 우리 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해석을 찾고자 하는 사람으로써, 이 커피에 진심인 사람들이 정성껏 그 과정에 임하고 있다고 여겼다. 거주지 근처에 있는 유사 카페에 가봤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 같다. 제대로 커피를 만들어서 제공하는 건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1층 좌석 중 하나.

 

 

에스프레소의 날을 운영하나 보다.

 

 

작은 드립백을 팔기도 한다.

 

 

 

 

1, 2, 4층에서 마실 수 있다.

음료는 무조건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용하도록 권고된다. 계단으로 올라가다가 엎을 수 있으니깐. 정성껏 만들어서 맛있게 마시길 바라는 커피가 엎어지면 고객이나 바리스타 모두 마음이 아플 테다.

 

내가 주문했던 커피는 "브라질 세르카 데 페드라"였다. 커피와 함께 짧은 정보가 담긴 스티커를 준다.

스티커의 내용은 "살구·녹차의 향미, 대추야자의 단맛, 마카다미아의 고소함과 버터처럼 부드러운 질감"이라고 써 있다. 실로 마셔보니 그러하다라고 하기엔 아직 내 혀가 rough하다. 그렇지만 일행이 주문했던 "과테말라 산타이사벨 아말렘"에 비해 확실히 산미가 더 느껴졌다. 그리고 설명에서 말한 부드러움이 내겐 담백함으로 느껴졌다. 이전에 베리 맛과 약간의 산미가 들어있던 커피를 마시고 온 터라 더 잘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오후 2시 반 즈음의 2층

카페에는 바리스타 외에 우리만 있었다. 좌석 간 공간이 넓어서 좋았다. 창문 쪽 좌석도 그랬다. 

 

우리가 앉았던 공간.

한쪽 면에는 나무로 된 자리가 있다. 흰색, 베이지색(?)만 있는 것 같은 공간에 포인트를 잘 줬다.

 

계단과 엘리베이터, 화장실이 있는 쪽 공간도 자리 배치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 좌석 간 사이에 화분을 두면서 자연스럽게 거리감을 보충했다. 푹신한 소파와 무게감 있는 나무 자리 중 선택하면 된다.

 

2층에서는 1층이 내려다 보인다. 주문하는 고객도 보이겠지만, 아마 메인은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증거

아라비카가 이사했음을 드러내는 마지막 증거는 요 간판이었다. 두호동에는 주민센터랑 환여횟집밖에 없었을 텐데 since 1991이라니... 이거다. 못을 박는 증거였다. 커피의 전 과정을 다루며 진심을 보여주는 곳. 살아 있었구나.

 

오브레멘과 아라비카를 다녀온 우리 셋은 이렇게 평가하기로 했다. 커피는 아라비카에서, 빵은 오브레멘에서!

 

 

 

아라비카커피로스터스 : 네이버

방문자리뷰 394 · 블로그리뷰 466

m.place.naver.com

반응형